향수병 by 최지은 Quotes

향수병 by 최지은

미국집에 돌아오자 예의 향수병을 앓는다.
며칠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고
이번엔 예전보다 오랜기간 머물러 그 마음이 더하다.

밤낮이 바뀌지 않아
뱃속에서 말갛게 세상에 갓 나온 아이처럼
밤으로 낮으로 토끼처럼 자고
배고플 때마다 조금씩 음식을 먹는다.

꿈도 없는 잠을 자다 깨어
한국의 누구인가
어디인가를
보지 못하고
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머리속으로 인식되자 마자
갈비뼈와 갈비뼈 사이, 흔히 마음이라 잡히는 근육이 망치로 맞은 듯 얼얼 하다.

이렇게 한밤중
낮처럼 깨어있는 몸에
정적이 귀를 아프게 할 때는 
한국케이블 텔레비젼을 틀어 놓는다.

그리고 한국에서 깔아온 카톡으로 들어오는 메세지를 본다.
복잡하고 바쁜 한국의 낮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내오는 메세지들.

후배아이가 시끄러운 서울 통근전철 사람사이에 끼어 카톡으로 묻는다.

"향수병이 구체적으로 뭐야?"
"난 떠나 본적이 없어서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어."

난 정적의 가운데서 대답한다.

'물 속에 앉아 있는 느낌'-

'서울의 소음을 열심히 걸러내던 귀가 
지독한 정적에 적응하지 못하고 물먹은 귀처럼 아프게 찡찡거리고'

'크게 숨쉬며 뛰어 다닐 수 있게 하던 허파 대신
몸 속 어딘가 있는 아가미를 기억해내어
숨을 쉬어야 하는'

'재빨리 뭍의 기억을 지우고
정신을 차려 손발을 허우적거려 수영해내지 못하면
깊은 바닷속으로 빠져 죽고 마는...'

'그건 공기가 있고
두발로 걸을 수 있고
힘들면 앉아 쉴 수 있는 육지에서의 마음 아픔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무언가 다른 단계의 아픔이라고...'

'........................'

후배아이는 밝고 복잡한 도시 한가운데서 받아드는
깊게 어두운 낱말들에 당황한다.

당황하는 그 아이 모습에 미안하다.

그래
허우적 거리지 말고
그래서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지 말고
어찌되었든 몸 어딘가에 있는 아가미를 찾아
정신을 차려 수영을 시작하여야 하는 건
온전한 내 몫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 사이 조용히 이곳에도 해가 뜬다.
어둠에 갖혀 있던 이 곳 세상의 실루엣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 모습 또한 낯설지만은 않다.
내가 꽤 오랫동안 아가미로 살아온 이 곳 또한 떠나면 그리워할 모습들이겠지...

서울의 저녁을 기억하는 위장에
정신차리라는 듯
심하게 진하게 내려진 커피를 마신다.
'아침이야'하고..

이곳에서 태어나
아가미로 숨 쉬는 아이들이 깨어 파닥거리며
제 물을 만난 듯 휙휙 물살을 가르며 아침을 깨운다.

그래..

어찌되었든 살아야 한다면
더 이상 아파도 하지 않고 슬퍼하지 말고...입술 꽉 깨물고..

다시 멋지게 시작할 수 있을 거다.. 난 ^^


http://choejieun.tistory.com/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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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향수병이 심했을 때 읽으면서 위안을 얻었던 글. 한국인이 쓴 향수병 관련 글 중 가장 와닿았다. 아마 90% 정도. (서울만큼이나 복잡하고 바쁜 뉴욕에서 살고, 집이 바로 브로드웨이 옆이라 소음이 훨씬 심하다)

글쓴이가 잘 살고 계시길.

덧글

  • es 2018/08/13 13:07 # 답글

    좋은 시다. 나도 외국에 있을 땐 가끔 그런 느낌 들었는데, 이제 한국에 오래 있으니까 향수의 감정 자체가 그립기도 한 것 같아
  • hide 2018/08/20 20:42 # 삭제 답글

    초등때까지 몇개월 또 몇년을 식구들이랑 떨어져 지냈던기억..향수병을 읽으며 그때 생각이 났어.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느낌이란 부분을 읽으니 내가 그때의 상처로 40살까지 그리고 약하게는 지금도 느끼는 그리움이 정서적 향수같다는 생각.삶을 유영하는 법을 알고프다..
    오늘도 안녕..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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